“75주년 광복절 즈음하여”

전남희망신문 기자 승인 2020.08.18 09:30 의견 0
   

정창우 대표

올해 8월 15일은 광복 75주년 되는 해이다. 광복절은 일본에 침탈당했던 주권(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을 되찾은 날이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7월 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8월에는 제2차 ‘영일동맹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도 한국에 대한 지도 감리 및 보호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같은 해 9월 5일에는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로부터도 한국에 대한 지도·감리 및 보호의 권리를 승인받게 된다.

이에 1905년 11월 9일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 도착해 고종을 알현하고, 보호조약의 강제체결을 위해 회유와 협박을 거듭했다.

고종이 순순히 응하지 않자, 이토는 11월 17일 한국정부의 각료들을 일본 공사관으로 불러 보호조약을 승인하게 했는데 이를 을사조약(을사늑약)이라 한다. 이로 인해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은 국제사회에서 없어져 버렸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8명의 이름이 있다. 당시 8명 대신 중에서 을사늑약 체결에 대해 끝까지 반대하다 감금까지 된 분은 참정대신 한규설이 유일하다.

이완용은 체결을 받아들이자고 몰고 간 악인이며, 박제순은 애매한 입장을 취하다 싸인을 했고, 이지용·권중현·이근택은 조약에 찬성한 자들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을사오적’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권중현, 이근택 등이다.

이하영, 민영기는 당시에는 반대했지만 이후 친일의 길을 걸었다.

1905년 11월 17일,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치욕스러운 역사지만 우리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1910년부터 1945년 해방되기까지 35년간 국민은 일본의 뜻에 따라 움직였으며, 국제적으로 독립적인 발언을 할 수 없는 일본의 식민지로 존재했던 일제강점기를 거쳐야 했다.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게 항복하고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했으며 일제 식민지에서 독립했다.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광복절은 독립과 정부 수립을 축하하는 국경일로 1949년에 정해졌다.

​또 1965년에는 대한민국과 일본은 한일기본조약에서 을사늑약, 한일 병합 조약을 포함,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무효임을 확인했다.

광복절은 주권을 되찾았다는 뜻이다. 1945년을 광복 원년으로 75년이 지난 지금 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해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해방 직후 미군과 소련에 의해 대한제국지역은 미국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과 소련 중심으로 공산주의 체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되었다.

8월 15일은 우리에게는 광복이지만 불행하게도 한반도는 이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있고, 공산주의로 건국된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한 세습 독재국가와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이런 결과는 모두가 국민과 나라를 지킬 힘이 없고 사색당파로 국론이 분열되고 고종황제나 관리들이 무능했기 때문이다.

임금과 대신들이 사리사욕에 눈멀지 않고, 나라와 국민만을 생각하고 국방력을 키웠다면 나라는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고, 일제강점기도, 독립운동을 위해 수많은 선열과 국민이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동족상잔의 비극도, 이산가족도, 남북통일이라는 말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니, 자유민주주의라는 말도, 좌파도 우파도, 광복절 등도 없었을 것이다.

아픈 역사와 과거를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론통일과 국민화합에 있다.

국민화합은 힘 있는 자가 먼저 손을 내밀고 양보하고 배려할 때 이루어진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의 통 큰 양보와 배려와 화합이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 75주년 기념식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나라의 독립을 이룬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정신을 되새긴다고 밝혔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나라를 되찾는 것이자, 동시에 개개인의 존엄을 세우는 과정으로 독립, 주권재민의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는 혁명을 동시에 이루었다고 말했다.

또 당당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 국민의 노력은 광복 후에도 멈추지 않았으며, 국가의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고, 인권을 억압하던 시대도 있었지만, 우리는 자유와 평등, 존엄과 안전이 국민 개개인의 당연한 권리가 되는, '나라다운 나라'를 향한 발걸음도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우리 국민은 전쟁의 참화를,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일본의 수출규제라는 위기도 국민들과 함께 이겨냈으며 오히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로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코로나 위기 역시 나라와 개인, 의료진, 기업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극복해냈고, 정부는 방역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고, 국민은 정부의 방침을 신뢰하며 스스로 방역의 주체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제 우리는 '이웃'의 안전이 '나'의 안전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사람 중심의 '상생'을 바탕으로 '고용·사회 안전망'을 더욱 강화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려 번영과 상생을 함께 이루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격차와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것으로 모두가 함께 잘 살아야 진정한 광복이라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마지막으로 국가를 위해 희생할 때 기억해줄 것이라는 믿음, 재난재해 앞에서 국가가 안전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믿음, 이국땅에서 고난을 겪어도 국가가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 개개인의 어려움을 국가가 살펴줄 것이라는 믿음,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 이러한 믿음으로 개개인은 새로움에 도전하고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으며, 국가가 이러한 믿음에 응답할 때 나라의 광복을 넘어 개인에게 광복이 깃들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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