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戌種子(술종자)

전남희망신문 기자 승인 2019.09.16 10:39 의견 0
   

진촌 고일석

광복 74주년 과 3.1독립만세 운동 및 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 감회가 새롭고 광복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선현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이란 자기의 일을 남의 간섭이나 제약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다는 말이다. 이를 쉬운 말로 말하면 自決權(자결권)이라 한다. 우리민족은 단군이 개국한 이래 외세의 침입에 의연히 일어나 싸우고 이겨냈다.

1875년 日帝(일제)는 운양호사건을 일으키고 1876년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조차지의 설정, 한국연해측량 자유, 부산항 외 2개의 항구 개방, 일본인 治外法權(치외법권)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원산과 인천을 개항하여 일본인 출입과 상업활동을 자유롭게 하였다.

이후 일본은 여러 종류의 협약을 맺고 한국의 내정을 간섭하다가 1905년 11월 한일신협약(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빼앗고 우리의 자주권이 일본에 넘어가게 되었고, 1910년 한일병합(경술국치)을 통하여 일제의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었다.

일제식민통치는 무자비하게 진행된 살인과 착취 민족말살정책 그 자체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집안의 이야기 하나 해보겠다. 우리집안은 할머니가 나이 30에 아들 4형제를 거느린 가난한 청상과부 집안이었다.

우리아버지 형제는 4형제였다. 이 4분 형제 중 두 번째 큰 숙부님과 세 번째 중부님이 일제 징용에 끌려가게 되었다. 할머니는 청상이 되어 오로지 자식들만 보고 살아왔는데 두 아들을 전쟁 통에 내보내고 불안과 초조 힘없고 가난 때문에 자식을 사지로 보냈다는 자괴감으로 지새우다 스트레스를 받아 몸에 무슨 이상이 생겼던 것 같았다.

1940년대 그 때는 질병을 치료할 병원이나 약국이 없어서 민간요법에 대개 의지하고 있던 시절이어서 할머니는 무슨 약초들을 끓여서 몸을 씻기고 몸에 부었는데 할머니는 장독에 홀랑 맨몸으로 서있고 어머니가 약초달인 시커먼 물을 머리에 부어드리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이 때 할머니는 체면이나 부끄러움은 한갓 사치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두 숙부님이 광복이후 집에 돌아올 때까지 집안은 항시 초상집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민족은 이러한 끔찍하고 처참한 상항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을 하였는데, 그 것이 의병활동과 민족계몽운동 교육운동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에 맞섰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민족생존의 기반이 무너짐을 그냥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1919. 3. 1일 피를 토하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세계만방에 우리는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하고 비폭력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언젠가 중국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가보았는데 그 곳은 가난한 서민들이 사는 빈민촌이었다. 따닥따닥 붙은 낡고 허름한 건물 좁은 공간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하였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 진일이 있었다. 여기서 글을 한편 썼는데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 : 임들이시어. 임들이시어 당신들은 위대하셨소/ 이 좁은 공간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얼마나 애가 타셨습니까/ 조국에서 들려오는 소식 듣기 위해 눈은 바다 건너 해 뜨는 동방에 매달아 아린가슴 쓸어내림을 헤아릴 수 있으랴/ 여기 빈민촌 비록 허름한 건물의 한 켠이지만/ 조국의 희망이 자리잡았고/ 찬란한 햇살이 떠오르기 위해 첫닭이 울어야 여명이 밝아오듯이/ 광명의 빛이 조금씩 조금씩 비추기 시작함이요/ 해방의 효시였습니다/ 악마의 손길이 언제 밀어닥칠지 모르는/ 긴장과 공포감이 가득한 상항 속에서/ 분노를 삼키고 삭혀내는 탄식소리 들립니다/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모습이 보입니다/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오늘 내가 여기 있음은 님들의 고난의 덕입니다/ 머리 숙여 감사하오며 명복을 빕니다.

국내에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이 계속되어 독립투사들은 국외로 망명하거나 탈출하여 독립투쟁을 계속하였는데 주 무대가 중국이었고 만주지방이다. 일본은 만주지방 우리 독립군을 토벌할 목적으로 괴뢰국 만주국을 세우고 이루 셀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특히 모성애 실험을 하였다. 모자를 방에 가두고 방에 불을 지펴 방이 뜨거워지게 하고, 극한 상항까지 가도 자식을 보호하는지 자식을 밟고 일어서는지를 실험하였다 한다. 이것이 과연 사람이 할 짓 인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민족도 이 실험에 희생된 사람이 밝혀진 것만도 6명이라고 하는데 만주가 우리독립군의 본거지요, 조국을 탈출하여 망명생활을 하던 지역이어서 밝혀지지 않은 수가 훨씬 많으리라 믿는다. 이 부대에서 희생된 사람이 몇 만 명이라고 하니 말이다.

우리가 해방이 되어 빛을 되찾은 지 74년이 되고 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우리의 독립은 미완의 단계요 현재 진행형이다.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독립이란 국어사전에는 다른 것에 딸리거나 기대지 않음이라고 하였다. 자기의 일을 남이나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일제는 지금 제2의 침략전쟁을 벌이고 있다. 경제보복으로 우리의 경제를 마비시키겠다는 심산으로 우리산업에 필요한 핵심물자를 수출을 막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 우방이라고 하는 미국은 뒷짐만 지고 바라만 보고 있으며 김정은은 미사일을 쏘며 도발하고, 중국과 소련의 비행기는 우리영토를 무단으로 침입하는 현상에 놓여있다.

일제가 침략하여 늑탈을 해 갈 때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상처가 너무나 많다. 일제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침탈해 왔지만, 그들을 돕는 송병준 이완용 이용구등 戌種子(술종자) 친일파가 준동하여 더욱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면 작금의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인사들, 무슨 대학교수, 무슨 연구소 소장이니, 무슨 신문 논설이니 방송인이니 하는 인사들 이들은 戌種子(술종자) 친일파임이 분명한 것 같다.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강제징용이나 위안부문제는 1963년대 한일청구권으로 모두 해결되었으며, 위안부나 징용을 간 사람들은 돈을 벌기위해 갔다느니, 일본이 한국을 식민통치한 것은 한국발전에 발판이 되었다느니, 일본제철은 우리나라 포항제철등 체철산업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였으니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들이 쓴 글을 보면 생각 없이 보다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라를 위해 정치를 한다는 어느 정치인들이나 정당을 보면 지금 일본이 하는 행위에 대해선 어떤 대책도 내어놓지 못하고, 비판도하지 못하면서 외교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등 정부만 몰아붙이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국민은 현명하고 위대하다. 이들의 외침에는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자발적으로 일본제품 안사기, 일본여행 안가기 운동을 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민족을 100년 전의 어둡고 미개한 상항인줄 오판하고 달려든 것 같다. 우리는 IMF도 이겨낸 민족이다. 5천연 역사에서 외세의 침입에 항거하고 물리쳐 이겨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지혜를 모은 민족이다.

살인을 하는 사람은 무식계급의 사람보다는 지식계급의 사람들이다. 인류역사에서 지식인들은 사람을 해치는 계획을 세우고 그럴듯한 미사어구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현혹하고 유혹을 하여 만행을 자행하고 만행을 저지르게 한다. 우리시대 일제의 만행과 이에 동조하는 우리시대 戌種子(술종자)들이 지금도 많이 준동하고 있으니 가슴이 아프다. 이 술종자들은 대학교수요 신문사논설 등 지식의 최정점에 있는 인사들이다.

기업인들도 이제까지 일본기업과 제휴하고 일본기술에 도입에 의존하여 우리산업기술 발전에 등한시 한 면도 없지 않았으나 이제 기술 자립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한목소리를 내고 정부예산도 뒷받침하겠단다. 대통령도 산업자주시찰하고 기업인들 애로를 듣고 도울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의 독립은 미완의 현재진행형이나 완료형이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멀지 않을 것 같다. 힘을 내고 힘을 합쳐 극일을 하자고 제안해 본다.

저작권자 ⓒ 전남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