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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
▲ 8월09일 1일째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의 문화 탐방을 위한 지인들과 3박 4일의 일정은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는 남과 북으로 분단된 지 60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화해의 손짓은 사라지고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긴장감은 더해가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에는 남북한이 개성공단 정상화와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 하는 등 새로운 돌파구가 형성되고 있지만 분단으로 인한 한반도의 정세는 항상 불안하기만 하다.
세계유일의 분단국가, 남한의 한라산에서 북한의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북한을 통해 탐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중국을 통해서 백두산 천지를 가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지인들과 일정을 잡고 계획을 세워서 뜻 깊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라는 희망석인 기대를 하면서도 그 희망이 현실로 다가 오기에는 너무나 먼 기다림일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에 한 숨도 같이 하게 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슴에 담아야 할 명산,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의 신비로움을 눈으로 보고 확인 했던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여행 첫날 일정으로 2013년 8월9일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위해 새벽 3시 50분에 함평에서 지인들과 승용차로 출발했다. 일행은 인천공항에 6시 50분에 도착 공항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출국 절차를 마무리 했다.
일행은 9시30분 아시아나 비행기에 탑승을 시작했고 비행기는 9시50분 대한민국의 하늘 관문인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이륙한 비행기는 맑은 하늘 구름위로 약 1시간 50분을 날아 11시40분(중국시간 10시40분)에 장춘공항에 도착 했다. (이글에서 대한민국과 중국은 1시간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현지 중국시간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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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 공항 |
장춘공항은 인천공항에 비해 협소 했으며, 입국 절차와 화물을 찾는 시간이 1시간여가 소요 될 정도로 공항 시스템이 고객을 위한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가이드를 만났다. 가이드의 인솔 하에 버스에 탑승했으며 12시경 버스는 첫날 목적지 이도백화로 출발 했다.
전용버스가 출발하고 가이드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기사님(중국말 ‘송 따거’), 수고하셨습니다(쉰 콜라) 등 중국말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호텔, 식당, 차량, 화장실 등의 중국 문화를 설명하면서 한국과 비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만큼 한국보다는 문화의 차이도 있지만, 시설에서 부족함이 많아 너무 집착하게 되면 즐거운 여행이 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해 가이드가 먼저 마음가짐을 갖으라는 설명이기도 했다.
‘장춘’은 길림성의 성도로서 52만 인구와 정치, 경제, 문화, 교통 등의 중심지이며, ‘자동차 도시’도시로 중국 자동차 생산량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2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중국과 합작으로 금호타이어 공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고 했다.
전용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광활한 들판에는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으며, 대부분 사람의 손으로 직접 재배하고 수확한다고 한다. 토지는 중국 국가가 소유하고 있으며, 30년임대로 주민들이 경작하고 있다.
주택이나 건물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시골을 연상하면 되고 송전탑, 철탑, 전신주 등이 들판에 세워져 있는 정도이고, 그 밖에는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다. 옥수수는 사료용과 공업용이며, 식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자기 집 주변에서 경작한다고 한다.
전용버스는 옥수수 밭 사이 고속고로를 향해 달렸고 송하강변을 지나 오후 2시경에 길림성의 교화라는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원탁위에 몇 가지 음식이 준비 되었고 음식은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보다더 출발하기 전 가이드가 설명을 했지만, 식사하기 전 식당 안의 화장실을 들렸는데 물이 공급되지 않고 관리상태가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문화의 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관광객을 맞이하는 서비스 측면에서 개선되어야 할 과제임에는 틀림없었다.
아무튼 점심을 해결하고 전용버스에 몸을 실어 달리고 또 달렸다.
가이드는 가는 도중에 휴게소가 없어 화장실 가는데 불편함이 따르기 때문에 부득이 한 경우에는 옥수수 밭에서 볼일을 볼 수밖에 없다는 안내를 해 주었다.
일행 중에는 화장실 가는 것 보다 옥수수 밭에 가서 볼 일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푸념에 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옥수수 밭에서 볼일을 해결하는 추억의 페이지는 갑작스레 내리는 비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으며, 참고 참으면서 들렸던 화장실 또한, 우리가 경험했던 70~80년대 학교 화장실 수준이었다. 중국 여행을 다녀온 관광객은 누구나 경험했던 추억이었을 것이다. 추억으로 기억하기 보다는 과거의 우리 현실을 떠 올리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행들은 똑 같은 창 밖의 옥수수 밭 풍경에 지루 했던지 오락(화투)을 했다. 전용버스 좌석에 앉아 불편함을 호소하면서도 오락에 빠져 있었고, 달리던 버스도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4시간 20분여를 달려 7시경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강원도 식당(식당명)’에 도착했다.
그래도 저녁식사는 점심때와는 달랐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7시40분경 일행이 첫날 휴식을 취할 숙소로 향했다.
전용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 8시40분경 이도백화 백두산 북파산문 근처에 위치한 5성급 ‘란경온천호텔’에 도착했다.
일행은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호텔 내에 있는 ‘취룡온천’으로 향했다.
취룡 온천은 유황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피로회복과 피부에 좋다고 했다.
노천온천은 백두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다고 했으나 우리 일행은 밤에 도착해서 추억을 만들 수가 없었다.
중국 관광을 처음 해 보았지만, 취룡 온천을 즐기는 것도 입실 절차가 무척 까다로 왔다.
실제 들어가 보니 온천탕에서 몸을 씻고 있는 중국인들도 있었고, 물 색깔은 뿌옇게 흐려 있고, 각종 벌레들이 물위에 떠다니는 광경을 눈으로 보는 순간 온천욕을 하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이런 관리를 하면서도 수영복 착용 여부를 일일이 검사하고, 수영복을 지참하지 않은 일행에 입욕을 거절해 수영복을 직접 판매하고 있는 시스템에 불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도 타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고스란히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일행들은 온천물은 좋은 것 같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극도로 피로함이 엄습해 왔으나 온천욕을 마치고 밖에 나와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고 기나긴 약 20시간의 하루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은 깨끗했으며 편안한 잠자리를 통해 오늘 하루의 일과 속에 힘들었던 여정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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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비 |
▲ 8월10일 2일째
우리 일행들은 전날 새벽부터 장시간 버스이동 등으로 피곤했을 텐데 아침 일찍 약속 된 시간에 호텔에서 조식을 마치고 백두산 천지 관광을 위해 7시30분 전용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전용버스는 10분도 채 안되어서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고 주차장은 많은 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 장소가 백두산 북파 코스 입구였다.
가이드가 버스 내에서 간단한 광고를 했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백두산에 일찍 올라가기 위해 숙소를 가까운 곳에 정했다는 생각을 그 때서야 하게 된 것이다. 가이드는 일행들은 함께 움직여야 한다면서 일정장소에 있으라는 말을 건네고 장소를 떠나버렸다.
우리 일행은 다른 관광객들이 발을 옮기는 것을 따라 5분정도 걸으니 장백산이라는 한자가 보였다. 관광객들은 계속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고 우리 일행은 한 장소에 모여 가이드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 시간 정도가 흘렀는데도 가이드를 만날 수 없었으며, 전화를 해도 통화가 안 되었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인데 가이드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 표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표를 구하지 못하면 입장이 불가한 것을 알면서도 가이드는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리 일행들을 장시간 기다리게 한 것이다.
호텔 숙소가 북파코스 인근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표를 예매한 후에 여행일정을 진행했어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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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매표소 |
일행이 천지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매표소 건물 입구 광장 대기⇒매표소⇒버스 탑승⇒봉고차 탑승⇒ 백두산 천지 구경 등과 내려올 때 반대의 절차로 진행되는데 코스를 변경할 때마다 많은 대기 시간이 필요 했다.
대기할 때마다 일행들은 고통의 시간 이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중국인이었으며, 중국인들의 고유의 억양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공해로 느껴질 정도로 시끄러웠다. 기다리는 동안 끼어들기 하는 중국인들 때문에 눈살을 찌 뿌리게 했다. 하지만 탑승을 기다릴 때 마다 인산인해를 이룬 많은 관광객들 속에는 순서를 양보하는 아름다운 광경도 눈에 띄었다.
우리 일행은 주차장 도착한 지 2시간여만인 9시50분경에 버스 탑승권을 제시하고 버스에 승차해 20분 정도를 달려 봉고차 타는 장소에 도착 했다.
봉고차를 타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며, 일행 중 남성들이 먼저 봉고차를 타고 백두산 천지로 향했다.
천지로 올라가는 도로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했다. 급커브가 난무했고 급경사가 많은데도 운전자는 난폭운전 그대로였다. 봉고차는 속도를 줄이거나 위험한 상황이 와도 멈출 생각은 하지 않았다.
특히 반대편에서도 차기 내려오고 있는 데도 양방향 모두 과속을 하면서 곡예운전 그 자체였다. 만일에 하나 사고가 발생한다면 생명을 유지하기에는 극히 열악한 교통사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안전운전을 위해 도로 중간에서 관리하는 관리자 또한 배치되지 않았다.
사고에 대비한 안전장치는 하나도 없고 오로지 무사고 만 바라는 긴장 속에 시간이었다. 다행스럽게 아무런 불상사 없었지만 아찔하고 무질서한 그 광경을 경험한 일행들의 가슴속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이런 불안함과 불쾌한 감정으로 천지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봉고차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추위와 싸워야 했다. 20여분 전 봉고차 타기 전 기온과 천지 주차장 온도 차이는 극과 극을 달린 것이다. 우리는 반팔 등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여자 일행이 도착해야 함께 백두산 천지로 향하기 때문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몸을 부대끼며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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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오르는 길 |
30여분 기다리는 동안 날씨가 구름이 끼어 흐렸다! 바람이 거셌다! 등 변덕이 심했으며, 과연 청명한 백두산 천지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의문 스러 웠다.
여자 일행이 도착하고 백두산 천지를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날씨는 거센 바람과 흙먼지가 날려 눈물이 나오고 머리까락 속에 조금한 돌이 숨겨 있을 정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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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중국어 설명판 |
이런 가정을 거쳐 우리 일행은 천지(天地), 하늘의 호수, 평균깊이 213.3m, 최대 깊이 384m, 수면고도 2,257m의 광활한 모습과 함께 섬세한 천지, 백두대간 첫 시작, 우리민족의 영산으로 여겨져 온 그 장소에 2013년 8월 10일 12시경에 우뚝 선 것이다.
천지(天地)는 맑은 날씨와 자신의 광대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면서 우리일행들의 어두운 마음을 상쾌하게 씻어주었다.
특히 백두산 천지(天地)는 물이 흘러 나가는 장소가 3곳이 있으며, 그러나 아무리 가뭄이 들거나 비가 내려도 물의 양이 항상 똑 같다고 한다. 1년 중 230일이 흐린 날씨로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예상을 깨고 우리 일행은 우리의 벅찬 가슴으로 그 광대함을 보고 느끼고 받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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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서 내려다 본 전경 |
하지만, 뒷켠에는 옛 역사를 뒤돌아 생각하면서 이곳이 우리 조국의 땅으로 언제라도 밟을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이 광경을 사진으로 나마 남기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모자가 날리고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카메라 속에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담아 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분도 잠시 1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자 추위 때문에 더 머무를 수가 없었다.
이런 신비로움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 일행은 백두산 천지를 내려와 출발지점인 장백산 주차장에 오후 2시40분경에 도착했다.
장백산 주차장 입구 주차장에서 출발한 지 7시간 여만에 도착한 것이다.
이날따라 2만6000여 관광객이 방문해 지금까지 가장 많은 입장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장백폭포, 온천지대, 천지조망 등 일정은 포기를 하고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연길로 출발을 서둘렀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길림성 동부에 위치하여 러시아, 한반도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 11개 민족, 약 22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 40%가 조선족이다. 조선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하여 개척하였으며 이곳을 북간도라고 불렀다. 1955년에 자치주로 승격 되었으며 연길·도문·돈화·화룡·용정·훈춘 등 6개시와 왕칭·안도 등 2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하천으로 도문강·송화강·목단강·소분강 등이 있다. 연변은 한반도와 역사를 같이 하며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다. 그 때문에 청산리 항일 전승지·봉오동 항일전승지·일송정 등 유적지가 많다.
연길(延吉)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이며,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곳이다. 중국 조선족 문화의 중심지로 백두산 천지와 가까워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이곳은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따라 조선족 자체의 문자를 우선적으로 쓰고 있으며, 연변의 옥외광고는 한글로 표기되어 있다.
연길의 인구는 약 26만명에 달하며, 주변 농업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집산지이다.
한국어 방송국과 의과대학·연변대학 등이 있다.
전용버스는 천지를 출발해 3시20분경 점심식사를 하고 4시10분경 다시 출발했다. 8시경 연길 시내 도착 전신마사지 체험을 하고 9시경 식당으로 이동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인 국제 호텔에 도착 이틀째 일정을 마무리 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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